- 장애, 죄책감과 살 비비며 살아가기
- 간질지속상태 유진이의 엄마 김신애 씨②
- 2011.11.23 22:42 입력 | 2011.12.02 15:46 수정
이 땅에서 장애인부모로 살아가는 건 어떤 모습일까? 장애가 있는 자녀의 성장과 함께 변해가는 부모의 삶에 초점을 맞춰 그 속살을 들여다봤습니다. 비마이너는 장애아를 키우는 어머니, 아버지 네 분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
장애인과 비장애인 공통의 장
옛날에는 아이 하나 키우기 위해서 동네 하나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 알아서 키운다. 동네가 사라지면서 장애인은 더욱더 철저하게 분리되고 은폐됐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가기가 너무도 어려워졌다. 김신애 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공통의 장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 ▲또래 아이들보다 잠을 많이 자는 유진이. ⓒ김윤섭 |
![]() ▲유진이가 잠자는 사이 김신애 씨 가족의 일상은 굴러간다. 둘째 아이를 학교에 바래다주는 김신애 씨의 남편. ⓒ김윤섭 |
어찌 보면 그녀는 장애 전도사다. 각종 봉사단체에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그 피드백으로 그들을 장애인운동에 끌어들인다. 김신애 씨의 대학 후배들은 그들의 전공인 체육에서 ‘특수’체육으로 관심이 이동했다. 그녀가 다니는 교회의 또래 집단은 가족 등산모임을 만들어 주말마다 유진이를 서로 업어가며 등산을 하고 그 사람들이 꾸준히 부모회를 후원하며 도와주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통성을 회복하는 것.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기쁨뿐만이 아니라 슬픔도, 장애도 서로 나눠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인식하고 있고 또 그러한 나눔의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현재 유진이가 다니는 학교의 특수반에 불만이 많다. ‘특수’라는 이름으로 더 나은 보살핌과 맞춤교육을 제공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장애인을 격리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학생들 사이에서 장애학생은 은폐되고 그들 간의 공동의 장은 사라진다. 일반 선생님들도 장애학생에게 관심을 끊어도 될 좋은 이유를 제공하는 꼴이다.
교육적인 면에서도 하나도 나을 게 없다. 일반학생들은 자신의 바로 앞에서 생생하게 장애체험학습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일례로 구미의 특수학교로 진학했던 장애학생들이 졸업 후 다시 울진의 센터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와 달리 특수학교에 가지 않고 그냥 동네에서 대충 눈칫밥 먹으며 자란 아이들도 있다. 이 둘을 비교해 보면 비슷한 장애가 있음에도 동네에서 자란 아이들의 언어나 행동 능력이 월등히 높다고 한다. 전문화된 교육을 한답시고 장애인을 고립시키는 것은 오히려 장애학생의 사회성을 잘라내는 일이다.
장애인운동, 끊임없이 정책 생산해야.
장애인운동에서 그녀가 처한 위치는 소수 중에서도 소수에 속한다. 비장애인에 비해 장애인이 소수자라면 도시보다 농촌이, 복지 혜택이 필요한 장애인보다 의료 혜택이 필요한 장애인이 소수이다.
“우리는 소수이기 때문에 서울에서 장애인운동하면서 정책을 만들어가는 분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해요. 울진에 있는 저렇게 큰 병원에 재활의학 의사가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없어요. 우리 울진에는…”
이러한 현실의 특수성은 울진 지역의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울진원자력발전소 덕분에 울진군의 예산은 많다고 한다. 그래서 큰 병원을 세웠지만 마찬가지로 원자력 덕분에 인력부족을 겪고 있다. 은퇴를 앞둔 의사들 외에는 지원자가 없는 것. 산모가 애를 낳기 위해서는 포항까지 가야 하는 것이 울진군의 현실이다. 이런 종류의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도시에서 쏟아낸 각종 정책은 현지 상황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울진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은 김신애 씨와 동료가 서울 중심으로 운영되는 정책의 한계를 보게 했다. ⓒ김윤섭 |
이러한 지역적 소수성에 더해 김신애 씨를 더욱 소수자로 만드는 것이 있다. 장애인 정책을 복지와 의료로 나누자면, 딸 유진이는 의료 혜택이 더 필요하다. 최근 장애인에 대한 각종 지원이 늘어나고 있지만 너무 편향적으로 복지에 치중돼 있다. 한번은 유진이의 배에 달린 음식물섭취튜브의 작은 버튼 하나가 수입되지 않았다. 김신애 씨는 9시 뉴스에까지 나와서 강력하게 항의했고 그제야 겨우 수입되기 시작했다는 것. 이렇듯 특수하고 다양한 사례들, 특히 의료에 대한 세세한 부분이 충족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녀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장애인 단체의 관료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애인부모회도 마찬가지다. 초기 장애인부모회는 운동성이 강한 단체였다. 하지만 정부 지원으로 센터들이 생기면서 활동가들이 센터장으로 운영을 떠맡게 되면서 급격하게 보수화되었다고 한다. 건물 운영 등에 급급하면서 아이들만 맡아주는 그런 편안한 단체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신애 씨 같은 특수한 요구사항이 발생했을 때는 그것을 수용하기보다는 그런 필요가 있는 사람들끼리 활동하라고 말한다. 새로운 요구가 생겨날 때마다 매번 새로 조직하고 새로운 단체를 만들고 운동을 새로 시작해야 할까? 김신애 씨는 물론 당사자들이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새로운 요구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새로운 정책을 지속적으로 생산하지 못하는 단체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지속적으로 정책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대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공통의 장은 대화가 가능할 때 지속된다. 대화능력을 상실한 관료적인 단체는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장애인들을 밀폐시키는 장소로 전락하고 그곳에서는 다시 차별과 폭력이 반복되지 않을까?
장애인 부모로 살아가기란?
인터뷰를 끝내기 전에 김신애 씨에게 장애인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부탁했다. 그러자 그녀는 죄책감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제가 죄책감에 대한 글을 엄청나게 읽었어요.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근데 결론은 안 없애는 게 맞다. 못 없앤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어요.”
![]() ▲아이의 특수함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면 죄책감과 고립만 더 커진다고 이야기하는 김신애 씨. ⓒ김윤섭 |
많은 장애인 부모들이 자녀의 언어치료, 운동치료, 조기교육, 특수교육 등 온갖 재활에 목숨을 건다고 한다. 김신애 씨는 필요하다면 열심히 하되 목숨 걸지는 말라고 말한다. 많은 장애인 부모들이 장애를 비정상의 범주에 놓고 자식이 그렇게 된 것이 자기 책임인 것인 양 정상의 범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죄책감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조급증이 죄책감을 키울 뿐만 아니라 자식들을 특수학교에 몰아넣는 등 장애를 더욱 대상화하고 밀폐시키는 방향으로 간다.
해결책은 죄책감이든, 장애든 우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와 죄책감은 어쩌면 비슷한 것일 수도 있다. 삶을 불편하게 하는 장애, 나의 감정을 불편하게 하는 죄책감. 자신을 조금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이 생겼을 때 그것을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개조하려는 노력보다 오히려 그것들과 빨리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녀는 그런 방법을 터득했다고 말한다.
“유진이가 잇몸치료 중이어서 피 흘리면서 누워 있으면 밥 먹다가 피 냄새가 나요. 그러면 '저기 드라큘라다'하고 농담하면서 밥을 먹어요. 일상에서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면서 우리는 행복하게 지내요. 대다수의 장애인 부모님들이 그런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런 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찾은 거죠. 내가 찾았다고 또 그분들에게 받아들이라고 말을 하고 이러면 그게 될까요? 절대로 안 돼요. 본인이 그렇게 스스로 노력해야 해요.”
딸의 피 흘리는 모습, 경기를 일으키는 모습. 이런 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부모가 있을까? 물론 치료할 수 있다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각각의 장애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인정하고 그것이 불편하더라도,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같이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장애와 공동의 신체, 공동의 리듬을 구축하는 것. 경기 일으키는 딸의 모습과 같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과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신체로 변신하는 것. 이것이 장애인운동의 핵심이 아닐까?
김신애 씨는 언제부터인가 딸 유진이의 죽음을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굉장히 큰 사건을 겪었을 때 내가 한 번 겪었으니까 똑같은 상황이 되면 내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똑같은 상황이 돼도 똑같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렇게 느낄 거예요. 그냥 최선을 다하는 게 잘하는 거겠죠.”
이미 김신애 씨는 딸의 죽음과도 어느 정도 친해진 듯하다. 유진이가 죽었을 때 다가올 아픔과 혼란을 익히는 중이다. 자신과 전혀 다른 이질적인 존재에 자신을 내던지며 죽음과도 같이 살을 비비며 사는 김신애 씨의 가족은 엄청난 모험을 하는 중이다. 이 모험이 끝나는 순간, 아니 절대 끝나지 않을 이 모험 속에서 김신애 씨네는 더욱 강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이 땅의 모든 장애인 부모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 ▲한번 고통을 겪었다고 해서, 다음이 견디기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건을 직면하고, 그것에 부딪히며,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김신애 씨. ⓒ김윤섭 |
*글쓴이 모기 님은 서른살 만년백수로 영화와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할 일 없는 요즘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글, 연극, 퍼포먼스 등으로 남 일에 끼어들기를 좋아합니다. 장판에도 가끔 기웃거리며 참견 아닌 구경을 하다가 어찌어찌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진 찍은 김윤섭 님은 몇 해 전까지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내는 월간 <인권>의 사진기자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매체에 기고하며 사진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모기
'오덕후인증 > 사 람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우증권 클래식 우승사진 (0) | 2012.12.16 |
---|---|
[스크랩] 김연아와 아사다마오이야기 (폭풍스압임....폭풍폭풍폭풍...그치만 읽어볼 가치有!) (0) | 2012.03.27 |
[스크랩] 비마이너 김신애 인터뷰기사 1탄 (0) | 2011.12.12 |
박세리선수 . 체육훈장 청룡장 수상. (0) | 2010.11.18 |
김명민 팬미팅 / 2010.7.18. (0) | 2010.07.26 |